‘금융 4.0’의 생생한 발전을 매주 정리합니다. 이 글은 가상자산, 탈중앙금융,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등 블록체인 기반 금융 동향과 실사용 방법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필자는 국내 대기업 IT 회사에서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 솔루션의 개발부터 배포까지 기여한 바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블로코(Blocko) 등 몇몇 중소기업 외에는 블록체인을 솔루션까지 개발하여 배포하는 기업은 국내에 없었다.
심지어 대중은 블록체인은커녕 비트코인조차 관심 없던 시기다.
당시 가장 독보적이었던 블록체인 컨소시엄은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이 창립하고 IBM이 주관했던 하이퍼레저(Hyperledger)와 R3 코다(Corda) 기반 R3 컨소시엄이다.
2016년은 이더리움 기업연합(Enterprise Ethereum Alliance)이 창립되기 이전이고, 당시 이더리움의 가격은 1만 3천 원도 안 되던 시기다.
참고로 이더리움 가격 폭등은 2017년 2월 28일 전 세계 주요 30개 기업이 이더리움 기업연합(Enterprise Ethereum Alliance)에 함께한다는 소식이 전파된 직후 시작됐다.
필자는 당시 재직하던 회사가 이더리움 기업연합에 참여함에 따라 직접 지원한 바 있다.
당시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국내 기업의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2016년, 정부는 가상자산에 대해 관심이 전무했으며, 극소수 기업이 블록체인을 연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컨소시엄이 신규 기술을 연구하고 협업한 반면, 국내는 비트코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블록체인 연구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이다. 이는 블록체인 관련 정부 과제 수와 사기업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보니, 필자가 재직했던 기업 부서명이 블록체인 사업그룹이 아닌 비트코인 원천 기술명인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DLT) 약자만 사용했다. 물론 부서명을 DLT사업그룹으로 결정한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정적인 시선’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몇 년이 흐른 지금, ‘대기업이 바라보는 비트코인’은 많이 달라졌을까?
2020년 10월 페이팔(Paypal)이 본격적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지원 소식이 전해졌다. 이 시점에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전 세계 기업의 시선을 정리해 본다.
대기업 관점에서 비트코인이란?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블록체인은 중요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닥…
- 블록체인은 물론 관심 있고, 비트코인 또한 무시할 수 없음
- 비트코인을 신규 자산의 유형으로 인정하기 시작
1. 블록체인 중요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닥…
대부분 대기업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 기업 관점에서의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자산이다.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 여부를 떠나 기업의 핵심 성과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무관하다고 본다.
그들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블록체인 기술로 핵심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전념한다.
IBM 등 글로벌 대기업 대부분이 그러하며, 다양한 블록체인 컨소시엄에 참여하거나 핵심 멤버로 주도하는 데 앞장선다.
본 항목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개발, 배포, 지원하는 기술기업도 포함된다.
2. 블록체인은 물론 관심 있고, 비트코인 또한 무시할 수 없음
은행권, 금융권, 그리고 결제 관련 대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 송금(Remittance), 지급(Settlement) 등 블록체인 기술로 상당히 많은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술’에 중점을 둔 것이지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 가상자산의 수용과는 거리가 멀다.
단, 가상자산의 수용 면에서는 최근 페이팔의 행보가 주목된다.
페이팔이 2020년 10월 가상자산을 본격적으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실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지난 2014년 9월 비트코인 기반의 결제를 지원한다고 보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비트코인과 관련된 금융 인프라 부재 및 미해결된 네트워크 수수료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비트코인이 60만 원대에는 거래 수수료 비용이 문제 되지 않았는데, 가격이 폭등한 후 결제 수단으로 부적합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하락 시장에 대해 가치 보장을 해줄 수 있는 파생 시장이 부재했고, 수탁 서비스와 같은 지원 인프라 또한 전무했다.
그런데 지금 페이팔이 비트코인과 일부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한 결제 서비스를 다시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는 가상자산 수탁업체인 비트고(Bitgo)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페이팔이 깃발을 들었으니, 다시 한번 많은 결제 회사들이 비트코인 사업에 꿈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Stripe)가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했으나, 2018년도에 사업을 중단했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 금융권으로도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은행 및 금융권도 블록체인 기술에만 주력하기보다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해 더 많은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금융권의 보수적인 성향을 내려놓지 않는 선에서, 코닥(Kodak)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놓친 사례를 답습하지 않는 수준으로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3. 비트코인을 신규자산으로 인정하기 시작
비트코인이 가진 잠재적 가치를 좀 더 대중화하는 데 있어 대기업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들이 비트코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내재적 가치가 높아진다. 혹은 지금과 같이 지하 속에서 투기의 대상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입장과 시각은 ‘비트코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념’으로 좌우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미래가치를 플러스로 생각하는 대기업은 몇 곳이 있을까?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기업 중, 비트코인을 투자한 사실이 공표된 곳은 다음과 같다.
- MicroStrategy Inc. (NASDAQ: MSTR) – 약 4억 9천만 달러 (38,250 BTC)
- Square Inc. (NASDAQ: SQ) – 약 6천만 달러 (4,709 BTC)
- Riot Blockchain, Inc. (NASDAQ: RIOT) – 약 1천 360만 달러 (1,053 BTC)
- Bit Digital, Inc. (NASDAQ: BTBT) – 약 1천 230만 달러 (949.5 BTC)
- (2020년 10월 25일 기준: 1BTC = 12,930 달러)
여기서 강조할 사항은, 트위터 CEO 잭 도시(Jack Dorsey)가 설립한 결제회사 스퀘어(Square)가 2020년 10월 총 5천만 달러 상당 비트코인 약 4,709개를 구매했다는 소식이다. 당시 투자 규모는 2020년 2분기 스퀘어 총자산의 약 1%를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Riot Blockchain, Inc는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를 만든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와는 무관한, 비트코인 마이닝 관련 기업이다.
2020년, 비트코인에 대한 대기업의 관점이 달라졌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딜로이트가 2020년 3월 실시한 대기업 임원 대상 블록체인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중요성은 2018년부터 증가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 등 탈중앙 가상자산에 대한 중요도가 프라이빗 또는 퍼미션 블록체인 기반 자산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대비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현재도 기업의 핵심전략에 있어 비트코인은 추가하면 좋은 자산이긴 하나, 기대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보다(CBDC)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디지털 결제와 관련된 기업들이 비트코인의 진가를 알기 시작한 것은 희소식이다.
스퀘어의 비트코인 투자 소식과 더불어 페이팔의 결제 지원(2차) 선언은 비트코인 대중화에 초석이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례로 보인다.
대기업의 움직임은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제 거대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의 상용화에 힘이 싣게 될 것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