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매년 자신의 주주에게 서한을 보냅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 서한이 발간되었습니다. 모든 투자자가 알아야 할 유익한 내용이 많아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첫 번째 파트에 이어 두 번째 파트의 내용입니다. 이후 최종 파트는 이번주 내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의 첫 번째 파트 링크입니다.

두 도시에 관한 이야기

성공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 널려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이후, 아이디어와 야망은 가졌지만 대부분 적은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개인들이 자신의 꿈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둬왔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거나 기존의 것으로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워렌 버핏, 서부와 동부에서 엄청난 투자 기회를 잡다

찰리와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와 같은 개인들이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1972년 씨즈 캔디(See’s Candy)를 매입하면서 서부에서의 첫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투자하기 정확히 100년 전, 메리 시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통해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던 제품을 재발명했고, 이를 판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친절한 직원들이 가득했던 진귀한 매장에 그녀만의 사업 계획이 가미되었죠. 로스앤젤레스에서 자그마하게 시작했었지만, 이후 서부 전역에 수백 개 넘는 매장을 보유한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씨즈 캔디는 현재 미국 서부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씨의 이러한 창조물은 계속해서 고객들을 즐겁게 하는 한편 수천 명의 직원에게 평생직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버크셔의 임무는 단순히 시즈 캔디의 성공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었죠.

비즈니스가 꼭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경우, 손님이 왕입니다. 100년 이후, 시즈 캔디의 고객들이 버크셔에게 남긴 메시지는 확실했습니다: “내 캔디에다가 장난질 하지마.”

개구리 마스코트로 우리에게 유명한 게이코 또한 버크셔의 주요 투자처입니다.

자, 이제 대륙을 가로질러 워싱턴 D.C.로 가봅시다. 1936년, 레오 가드윈과 그녀의 아내 릴리안은 자동차 보험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판매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자동차 보험은 관례적으로 대리인을 통해 판매가 되어왔었죠.)

가드윈 부부는 10만 달러만을 가지고, 자신들 자산의 1,000배 이상을 가지고 있던 거대 보험업자들과 대결을 나눴습니다. 현재는 가이코(GEICO)로 이름이 줄여졌던 정부 직원보험회사(Government Employees Insurance Company)가 태어나기 직전인 것이죠.

게이코는 미국 현지에서 독창적인 광고로 매우 유명하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정확히 70년 전 이 회사가 지닌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즉각적으로 첫사랑에 빠진 것과 같았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버크셔는 결국 가이코의 100% 지분을 가지게 되었고, 지난 84년의 세월 동안 레오와 릴리안의 비전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조정만 할 뿐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는 변해왔습니다. 가이코가 온전히 운영된 첫해인 1937년, 가이코는 238,288달러 규모에 불과했습니다. 2020년 작년에 이 수치는 350억 달러로 바뀌었죠.

워렌 버핏의 고향 오마하에서도 재능이 꽃 피다

오늘날 엄청난 규모의 금융, 언론, 정부 기관, 기술이 동/서부 해안가 근처에 집중된 탓에, 많은 사람이 미국 중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두 개의 커뮤니티에 주목하고자 하는데요. 이 두 커뮤니티는 뛰어난 재능과 야망이 미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관한 좋은 예시가 될 것입니다.

제가 오마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놀라지 않을 겁니다.

오마하에 있다 보면 워렌 버핏의 출몰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잭 링와트는 오마하 센트럴 고등학교(찰리, 저의 아버지, 첫 아내, 3명의 자녀, 그리고 2명의 손자, 손녀가 모두 여기 출신입니다.)의 졸업생이었습니다. 잭은 125,000달러의 자본을 가지고 재산/상해 보험 회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잭의 꿈은 터무니없을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보험업자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매우 작은 규모의 운영만이 가능했죠. 더군다나 경쟁자들은 전국적으로 전통 있고 자금줄이 탄탄한 에이전트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다져놨습니다.

가이코와는 달리, 내셔널 인뎀니티(National Indemnity)는 잭의 플랜대로 에이전시들이 수락하기 꺼릴 정도로 수준이 높지 않은 일까지 닥치는 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내셔널 인뎀니티는 소위 “괴짜(odd-ball)” 리스크에 비즈니스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경쟁업자처럼 큰 “빅 보이(big boy)”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건들에 말이죠. 그리고 희한하게도 이러한 전략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잭은 솔직하고, 생각이 매우 빨랐으며,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약간 별나기도 했어요. 특히 그는 규제자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잭은 규제자의 감독에 자주 짜증을 부렸는데,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팔아버릴까 하는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15분 만에 기업 인수 딜을 마쳤을 만큼 확신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다행히도 그런 순간에 제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잭은 버크셔와 함께한다는 아이디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저희는 거래를 성사했습니다. 거래 후 악수까지 1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저는 회계 감사조차 요청하지 않았죠.

오늘날 내셔널 인뎀니티는 특정 거대한 리스크에 준비된 전 세계 유일무이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네, 여전히 오마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저희 버크셔 본사에서 고작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죠.

오랜 기간 저희는 오마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다른 기업들 또한 추가적으로 구매했습니다. 그중 잘 알려진 기업이 바로 네브래스카 퍼니쳐 마트(Nebraska Furniture Mart, 이하 NFM)입니다.

NFM의 창업가 로즈 블럼킨은 러시아 출신 이민자로, 1915년 영어로 읽거나 말할 수도 없는 상태로 시애틀에 처음 도착했습니다. 몇 년 뒤 그녀는 오마하에 정착하며, 1936년까지 가구 상점을 열기 위해 2,500달러를 모았습니다.

워렌 버핏과 로즈 블럼킨은 깊은 유대적 관계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경쟁자는 물론 공급업체마저 그녀를 무시했었고, 한동안은 그녀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 맞았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그녀의 비즈니스를 멈추게 했었고, 1946년 말 NFM의 기업가치는 고작 72,264달러에 불과했죠. 계산대와 예금에 있는 현금을 모두 더해도 50달러가 전부였습니다.(오타가 아닙니다.)

하지만 1946년 당시 기록되지 않았던 중요한 자산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루이 블럼킨입니다. 그는 로즈 블럼킨의 외동아들로, 4년 동안 미국 육군에서 복무를 마치고 상점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이는 오마하 해변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수행했고, 벌지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45년 11월 드디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죠.

로즈가 자기 아들과 다시 만난 이후, NFM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블럼킨 모자는 자신의 꿈에 이끌려 오전이고 오후고 가리지 않고 주말까지 열심히 일했죠. 그 결과는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1953년까지 블럼킨 모자는 6,000만 달러 가치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해 제 생일날, 버크셔는 NFM의 80%를 구매했습니다. 이번에도 회계 감사는 없었죠. 저는 블럼킨의 가족 구성원이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에 의지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블럼킨 가족의 3대, 4대가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죠. 로즈 블럼킨은 그녀가 103세가 될 때까지 매일 근무하였습니다.

네브래스카 퍼니쳐 마트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역대 최고 매출을 냈습니다.

NFM은 이제 미국에서 가장 큰 가정용 가구 상점 3곳을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상점 각각 2020년에 사상 최고치의 판매량을 달성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6주 이상 상점이 잠시 닫았음에도 이룬 엄청난 업적입니다.

이 이야기의 추신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블럼킨 가족이 연휴 식사를 위해 대규모로 모일 때마다, 로즈 블럼킨은 식사 전에 가족들이 노래를 부르도록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선곡은 절대 변하지 않는데요. 그것은 바로 어빙 베를린의 “미국에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America)”입니다.

버핏은 미국 중부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이제 오마하에서 조금 동쪽으로 이동하여 테네시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녹스빌로 가봅시다. 버크셔는 녹스빌에서 매우 뛰어난 두 기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클레이튼 홈즈(Clayton Homes)와 파일럿 트래블 센터스(Pilot Travel Centers)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클레이튼 홈즈에 대한 100%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일럿 트래블 센터스에 대해서는 현재 38%의 소유권만 보유하고 있지만, 2023년까지 80%로 늘릴 계획입니다.)

두 기업 모두 테네시 대학을 졸업하고 녹스빌에 정착하기로 했던 젊은 청년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두 창업가 모두 유의미한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있거나 부유한 부모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녔죠.

그렇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거죠?(But, so what?) 오늘날 클레이튼과 파일럿의 각각 연간 세전 이익이 1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둘이 합쳐서 47,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죠.

짐 클레이튼은 클레이튼 홈즈의 창업가입니다.

짐 클레이튼은 다른 벤처기업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이후, 1956년 매우 작은 자본을 이용해 클레이튼 홈즈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짐 하스람은 휴게소를 6,000달러에 구매하면서 1958년 파일럿 트래블 센터스를 처음 시작했죠.

이후 두 창업가 모두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었습니다. 이 아들들은 아버지와 같은 열정과 가치, 그리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유전자의 마법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90세가 된 짐 하스람은 최근 영감을 주는 책 한 권을 저술했습니다. 어떻게 짐 클레이튼의 아들 케빈이 하스람 가문에게 파일럿 트래블 센터스의 커다란 지분을 버크셔 해서웨이에 판매하도록 격려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죠.

만족한 고객이 상점의 가장 큰 세일즈맨이라는 것을 모든 소매업자는 알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주인이 바뀌어도 이 점은 똑같습니다.

“절대로 미국에 반대로 내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다음에 녹스빌이나 오마하를 지나갈 때면, 클레이튼, 하스람, 블럼킨 가문은 물론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성공적인 기업가에게 경의를 표해주세요. 이러한 건설가들은 그들의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 미국의 체제가 필요한 인재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또한 미국 헌법 제정가들이 추구했던 기적을 달성하기 위해 짐 클레이튼, 짐 하스람, 로즈 블럼킨과 루이 블럼킨 같은 시민들으르 필요로 합니다.

중국으로의 투자를 강조했던 레이 달리오와는 궤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기적을 이뤄내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번영의 확산을 도와 모든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찾은 것이죠. 하지만 23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미국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 인큐베이터는 없었습니다. 몇몇 심각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숨 막힐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더 완벽한 통합”이라는 헌법적 염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한 진보는 매우 느리고 불균등했으며,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희의 결론은 확고합니다: 절대로 미국에 반대로 내기하지 마십시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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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오형진

Editor

UCLA에서 경제학과 국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서울대 정치학 석사 과정에 있습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비즈니스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개인 블로그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https://blog.naver.com/dekop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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