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수입 교역 국가입니다. 하지만 중국을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중국> 시리즈에서는 중국의 행동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분석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주]

<그림1>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 벨트앤로드뉴스

지난 5월 26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중국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중국을 겨냥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며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지난 5월 24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의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한 발언을 놓고 ‘내정간섭’이라 발끈하고, ‘불장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 

자국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도 배척하는 중국의 태도는 항상 주변국의 반발을 사 왔다. 하지만 중국의 강한 반발심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분열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신장, 위구르, 티베트와 같은 지역 독립에 대해 중국이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분열 때문에 중국이 과거와 같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홍콩과 대만 그리고 모든 중국의 민족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분열에 대한 공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중국 정부의 많은 행동들을 그나마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중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제 자랑이 아니다.

중국의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민주주의 국가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중국은 현재 공산당의 일당독재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단 한 번도 민주화 요구에 직면해본 적이 없을까?

이 글에서는 중국이 왜 그토록 ‘분열에 대해 공포’를 갖는지 알아본다.

<그림2> 백화제방운동 당시표어 ./ 차오신

첫 번째 민주화 요구: 백화제방운동

의외로 마오쩌둥은 1956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식인들의 자유발언을 허용하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등 이른바 쌍백방침을 제시했다. 쌍백방침은 언론의 자유화 즉 정권에 대한 비판을 허용한다는 취지였다. 왜냐하면 한국전쟁 이후 중국공산당은 계급투쟁을 종식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지식계층을 포섭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마오쩌둥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공산당에 대한 강력한 비난과 비판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체제뿐만이 아니라 마오쩌둥 자신에 대한 비판도 등장하게 되어 결국 마오쩌둥은 지식계층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게 된다. 그 결과 정치투쟁은 민중이 아닌 당내에서만 허용되었고 당과 마오쩌둥의 지위는 신성시되었다.

결국, 지도자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신봉만 남아 대약진운동 같은 전국적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그림3> 천안문광장의 시위 모습 ./ 알자지라

두 번째 민주화 요구: 천안문 6.4항쟁(천안문사태)

마오쩌둥 사후 극적으로 복권된 덩샤오핑은 화궈펑과 권력투쟁 끝에 중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개혁개방정책을 필두로 시작된 중국의 경제정책은 중국사회의 양극화를 점진적으로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소련의 다당제 허용과 같은 조치들이 개방을 통해 외국문물을 접한 대중의 각성과 맞물려 공산당의 독재와 양극화 등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그때 민주화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던 후야오방 총서기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고자 천안문에 모인 수많은 대중이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덩샤오핑은 이들을 반혁명으로 규정하고 시위는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으나 덩샤오핑의 무력진압 결단으로 인한 군부대 투입으로 천안문은 피로 물들고 말았다.

모두 비극으로 점철된 두 차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살펴보면 중국이 현재의 폐쇄적 정치체제를 강화하는데 명확한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혼란으로 나라가 분열되어 힘이 분산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4> 중국해체직후의 모습(예상도) ./ 지엔캉우요우왕

중국이 분열된다면?

중국은 56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한족이 가장 다수를 차지하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지정학적으로 유용한 지역에는 소수민족들의 터전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히 중국으로 편입된 경우도 있었지만 티베트, 신장-위구르 지역같이 강제적으로 병합된 지역이 적지 않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에 대해 중국당국은 혹독하게 무력으로 진압을 한다. 만약 현재 중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소수민족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거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소수민족의 국가로 분리된다면 그만큼 중국의 영향력은 분명 약해질 것이다. 게다가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희토류와 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곳도 많아 중국 공산당에는 필요한 곳이다.

<그림5> 중국인의 ‘구경꾼-看客’ 심리 ./ 중신두징왕

중국의 약점: 분열에 대한 공포

따라서 중국은 동시다발적 분열을 가장 두려워한다. 때문에 이를 허용하는 어떠한 독립이나 민주화 운동도 억압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하기 이전 중국인들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고초를 겪었다. 루쉰(중국의 사상가, 근현대 중문학의 아버지 ‘노신’이라고도 한다)은 이 같은 역사적 원인이 남을 보고도 구경만 하는 구경꾼(看客)의 민족성을 만들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구경꾼들은 언제나 방관자일뿐 어떠한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기나긴 투쟁과 농민의 도움으로 힘들게 이룩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통일국가가 다시 해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대만과 홍콩 그리고 티베트, 신장-위구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강한 중국이 해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중국의 약점이다.

이런 중국의 두려움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다음 글에서는 분열에 대한 중국의 공포가 어떻게 시장경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 살펴보고 ‘위챗(WeChat)’과 ‘유쿠(youku)’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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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두솔

중국을 좋아해 중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11살 닥스훈트를 키우며, 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합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관계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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