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에서 주목받는 산업 중 하나가 핀테크(Fintech)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Deloitte)와 국제 금융회사 로보캐시(Robocash)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은 2020년까지 핀테크 산업에서 가장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투자 수치로도 나타나는데, 아세안 핀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가 2018년에 전년 대비 20~30%가 증가했다. 보고서에서는 핀테크 부분 상위 5개 아세안 국가를 선정했는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이다.

▲싱가포르는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아세안 핀테크 거래의 50% 이상을 담당했다. 싱가포르에 관한 소개는 추가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타 아세안 국가와는 규모가 다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규모에서 높은 기대감이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인터넷 사용자인데, 그 숫자가 1억 5천만 명이다. 인터넷 인구의 61%가 모바일 뱅킹에 가입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2018년 초, 국내 거래의 1/5을 전자화 하도록 정책을 수립했다.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한 정책을 발표했다. ▲태국은 82% 인구가 계좌를 가지고 있고, 인터넷 인구 10%가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다. 각 국가는 상황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핀테크 산업에서 중요한 지표들을 만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5개 국가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도 핀테크 산업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말레이시아 핀테크 스타트업과 규제 샌드박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핀테크 및 스타트업을 육성하고자 액셀러레이터 기관 매직(MaGIC Malaysian Global Innovation & Creativity Centre, 말레이시아 글로벌 혁신 & 창조 센터)을 2014년에 설립했다. 85%에 달하는 인터넷 보급률과 전체 인구의 76%가 도시에 거주하는 구조, 은행 계좌 보유율 85% 그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환경 등 세계 시장에서 테스트 배드로 눈독들일만 하다.

보고서를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아세안 핀테크 산업에 관한 가능성이 와닿지 않아 추가로 아세안 국가의 핀테크 산업 육성 의지에 관해 조사해봤다. 그리고 핀테크 업체와 금융기관 간 오픈 API라는 의미있는 시도를 발견했다. 은행과 핀테크 업체의 API 플랫폼은 우리나라도 있지만, 아세안의 시도가 놀라운 것은 ‘국가 간’ 오픈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핀테크 산업에 각 국가들이 힘을 쏟는데, 이들이 연합을 하고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APIX 플랫폼


◆ APIX는 무엇인가?

APIX는 2018년 11월 출시 한 세계 최초 국가 간 오픈 API 및 샌드박스(Sandbox) 플랫폼이다. APIX는 금융 기관과 핀테크 업체 간 혁신과 협력을 촉진하고 아세안 내 금융 부분을 디지털 방식으로 변화해 재정적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AFIN(ASEAN Financial Innovation Network, 아세안 금융 혁신 네트워크)이 출시했다.

APIX에 참여하는 금융기관은 32개다. 베트남,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가의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씨티은행,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등 글로벌 금융기관도 눈에 띈다. 핀테크 업체는 금융기관의 2배에 달하는 숫자가 참여했다. 참여하는 핀테크 업체는 대부분 아세안 내 여러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초 국가 간 오픈 API 플랫폼 APIX가 의미있는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APIX 참여 금융기관. / APIX

◆ APIX는 무엇을 제공하는가?

APIX에 참여한 각 국가 핀테크 업체들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APIX에 참여하면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API를 활용할 수 있다. 참여 기관 및 업체가 API 카탈로그(API Catalogue) 페이지에 API를 올리거나, API를 선택해 구독하는 방식이다.

API 카탈로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 아쉽지만 회원 가입은 기업 레벨로 제공하고 있다. 기업 제휴를 먼저 한 뒤 기업 직원 가입을 열어주는 방식이다.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API 카탈로그에 관한 자세한 조사를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아세안 내 금융 산업이 하나로 묶이는 상상만으로도 그 파급력이 느껴진다. 2017년 기준 아세안 인구는 6억 4천 7백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8.57%다. 이들이 하나의 금융 산업으로 묶인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 APIX는 누가 만들었나?

앞서 AFIN이라는 기관이 APIX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AFIN이 어떤 조직이기에 32개 금융기관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을까? AFIN을 만든 기관을 하나씩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AFIN은 싱가포르 통화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MAS),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IFC), 세계은행 그룹 그리고 아세안 은행 연합(ASEAN Bankers Association, ABA)이 협업해 만들었다.

AFIN

MAS는 싱가포르 중앙은행이자 싱가포르 통화청이다. 환율, 외화 보유액 및 유동성을 관리한다. 은행, 보험사, 자본 시장 중개 기관, 증권 거래소 등 싱가포르 내 모든 금융 기관을 감독하는 통합 감독자다.

ABA는 1976년 설립됐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 회원으로 시작된 ABA는 브루나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 뱅커스 협회 (Lao Bankers Association) 등이 가입해 10번째 회원을 받았다. ABA는 세계 시장에서 아세안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목표를 갖는다.

IFC는 민간 부문에 초점을 둔 최대 규모 글로벌 개발 기관이다. 개발 도상국 투자 자금 지원, 국제 금융 시장 자본 동원 및 기업과 정부에 관한 자문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처럼 AFIN은 거대한 그룹과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힘으로 빠르게 산업을 궤도에 올리는 것이 아세안의 매력 중 하나다. APIX가 성공사례로 떠오르면 단일 국가로 머무르는 핀테크 산업은 무척 부러워질 예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도 오픈 API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2016년 8월 은행권 공동 오픈플랫폼을 시작했지만, 오픈 API를 활용해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든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핀테크 스타트업 중 많은 인기를 얻는 서비스를 꼽으라면 소액송금 서비스 토스와 통합 자금관리 서비스 뱅크샐러드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토스는 유니콘 기업이(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으로 등극하며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오픈 API를 활용했을까?

토스(Toss)는 ‘펌 뱅킹(Firm Banking)’ 방식으로 소액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펌 뱅킹은 기업이 은행 등 금융회사의 전산시스템을 통신회선으로 연결해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제휴를 통해 수수료를 내는 방식이다. 오픈 API와는 거리가 멀다.

뱅크샐러드는 ‘스크래핑(Scraping)’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크래핑은 웹 페이지에 접근해 데이터를 긁어오는 방식이다. 프로그래밍적으로는 사용자가 웹 페이지에 직접 접속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오픈 API에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출시한 카카오 자금관리 서비스 역시 스크래핑 기술을 활용했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서비스들은 오픈 API가 아닌 다른 방식을 활용했다. 펌 뱅킹은 별도 전용회선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회선 설치 및 운영 비용이 든다. 스크래핑은 웹 페이지에서 필요한 정보만 추출하기 때문에, 원하는 데이터만 주고 받는 API 방식에 비해 느리고, 비싸다. 즉, 금융 기관이 데이터를 쉽게 오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을 만들긴 했으나 이를 활용해 송금 서비스를 만들려면, 이체 시 수수료가 건당 400~500원으로 비싸고 자격요건도 까다롭다. 펌 뱅킹과 스크래핑 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밖에 여러 문제점에 대해선 핀테크 업체들이 꾸준히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덕분에 금융당국도 혁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2019년 2월에는 금융당국이 금융결제망을 오픈해 수수료를 90%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1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토스 등 소액 송금 서비스가 혜택을 받을 예정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데이터를 오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세안 핀테크 산업은 MAS, ABA, IFC 등을 거대한 날개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 아세안 내 국가 간 거래가 이미 개방된 것은 마치 유로 통화를 떠오르게 한다.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큰 투자금이 몰리고 있는데, 정책마저 빠르게 방향을 설정해준다면 금융 시장에서 아세안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핀테크 산업에서 아세안의 도약은 이제 시작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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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편집장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비즈니스 전문가를 추구합니다. 와레버스에서 IT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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