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복잡한 경제 문제는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최근 경제 이슈를 쉽게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잡힐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5월 4일 기준 총 35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데요. 엄청난 감염력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국가가 유례없이 강력한 사회적 격리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An empty Times Square is seen on the street following the outbreak of coronavirus disease (COVID-19), in New York City, U.S., March 18, 2020. REUTERS/Jeenah Moon

사람들의 교류는 끊기고, 전 세계 수많은 도시는 흡사 좀비 영화에 나오듯 한적하기만 합니다. 뉴욕의 명소로 손꼽히는 타임스퀘어만 보더라도 수많은 인파로 가득 메워졌어야 하는데 저런 사진이 어색하기만 하네요.

저희가 눈여겨볼 점은 인파가 유일하게 사진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바로 자동차입니다. 감염력이 높은 바이러스를 피하고자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느는 한편,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이동 이외에는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동차의 사용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렇듯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자 석유 업계는 초비상사태에 돌입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의 사건으로 인하여 불황을 겪고 있던 석유업체들이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인데요. 미국 WTI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등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나오고 있습니다.(US oil prices turn negative as demand dries up)

그리고 미국 노스다코타에서 가장 큰 셰일업체인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이 4월 1일 셰일 업계 첫 파산신청을 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WSJ: Whiting Petroleum Becomes First Major Shale Bankruptcy as Oil Prices Drop) 심지어 지난 4월 30일 CNN 비즈니스의 한 면을 장식한 기사는 “석유 업계의 파산은 이제 시작이다(The oil bankruptcies are just beginning. Here’s who could be next)”라는 비장한 제목을 내걸었는데요.(CNN: The oil bankruptcies are just beginning. Here’s who could be next)

도대체 수요와 공급에 어떤 변화들이 있기에 이만큼이나 급격한 변화가 가능했을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코로나19, 석유산업에 드리운 그림자

모든 산업이 그렇듯 수요가 떨어지면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입니다. 석유산업도 이 무서운 경제상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지난 2019년 말 중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 모든 경제를 마비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석유에 대한 수요가 유례없을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기름을 아무리 뽑아내도 이를 구매해서 사용할 고객이 없으니 상품으로서의 석유 가격이 말 그대로 자유낙하하는 것입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의 급감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위에서 봤듯이 차와 같이 기름을 이용해 움직이는 수단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업계 또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비행기를 타려는 손님이 빠른 속도로 줄자, 항공업계는 기한없는 무급휴가와 임금삭감을 감행하는 한편, 지난 4월 29일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 회사인 보잉(Boeing) 또한 10% 이상의 직원을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나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NPR: Boeing Cuts Its Workforce Due To The Coronavirus Crisis)

Images provided by BBC

심지어 석유를 이용해 가동되는 공장들마저 전염병 확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동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동률이 떨어졌는지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인도와 중국의 하늘이 맑아지는 “기적”까지 일어나는 수준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단기간에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석유 업계는 수요의 급감으로 힘든 나날을 오랫동안 보낼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소리없는 전쟁

코로나19로 인하여 석유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공급까지 폭등하면서 더 말썽입니다.

사실 전염병이 퍼지기 전부터 지난 10년간 천연가스와 석유의 가격은 꾸준히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낱 돌멩이에 불과했던 셰일에서 원유를 뽑아내는 기술이 개발하면서 미국은 단 10년 만에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었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폭발적인 생산 증가로 인해 2011년 한때 90달러에 육박하던 WTI 유가가 점점 떨어져서 2019년에는 50달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셰일 혁명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미국 셰일 업계는 호황이었지만, 기존 산유국이었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는 줄어드는 수입으로 인해 고통받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Bloomberg: The Shale Revolution)

Graph illustrated by Bloomberg

공급이 너무 늘어나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생산자의 몫입니다. 이럴 때마다 산유국은 모여앉아 가격의 조절을 위한 감산, 즉 생산을 축소하는 데에 합의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하여 석윳값이 연초 대비 30%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죠. 그런데 올해 3월 8일,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15개국과 러시아가 감산 논의를 위해 만들어졌던 이 회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석유 업계의 미래가 순식간에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Vox: The Saudi Arabia-Russia oil war, explained)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그랬듯이 들어맞게 되었습니다. 합의에 실패한 바로 다음 날,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가격을 하루 만에 11달러를 내리고 동시에 5월 석유 생산량을 오히려 늘리겠다며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였습니다. 원유가가 하루 동안 내려갔던 가격 폭으로는 지난 1991년 이후 최초라고 합니다. OPEC을 대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두 거대 산유국의 치킨게임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WTI 가격은 31달러 선까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러시아까지 증산으로 맞불을 두면서 결국 3월 30일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추락하고 맙니다. 그래도 다행히 4월 초에 들면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1,000만 배럴 감산 합의에 이르렀지만, 그 합의에 따른 생산량 감축은 5월 말이 돼서야 발동되기 때문에 이미 떨어진 유가 가격은 한없이 내려갈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 그만 생산해… 보관할 공간조차 없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누구는 이렇게나 싼 원유를 잔뜩 사놔서 나중에 가격 올라가면 팔아치우겠다고, 대박 나겠다고.. 저 또한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했습니다. 석유 공간 수치를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지요.

우리 생각대로 이렇게나 가격이 떨어졌을 때 원유를 구매하여 보관한 뒤 팔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백만장자, 천만장자 자리를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세계의 대부 워런 버핏과 나란히 이름 올리는 행복한 상상까지도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보관입니다. 기름이 우유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담아놓을 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담아놓을 통조차 없어진 것이지요. 최근 치솟는 생산량을 감당하면서 석유 저장소가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려는 사람조차 줄어들다 보니 안 그래도 남아돌던 석유가 그 저장소를 빠르게 채워 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지난 4월 17일 기준으로 전 세계 77%의 석유 저장소가 석유로 가득 찼고, 빠르면 5월 첫째 주를 마지막으로 더 석유를 수용할 공간이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바다를 항해 중인 빈 배에 급한 대로 채워 넣는 식으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으로 얼마나 버틸지는 의문이 듭니다.(CNBC: The hunt for oil storage space is on — here’s how it works and why it matters)

석유를 저장한 배가 하루 정박하는 데에만 1억 원 넘는 돈이 소요되다 보니 결국 WTI의 5월 선물이 마감되는 4월 21일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소유할 공간도 없는데 4월 마감일이 지나는 순간 바다에서 석유를 머금고 기다리던 배가 당장 집 앞으로 배달 오는 것이 확정되기 때문이었죠. 배럴당 37달러 받고 그 많은 기름을 받으면 저장도 못 하고 버리게 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석유 업계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경제의 법칙은 간단하지만 무섭습니다. 석유 업계는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블랙스완으로 인하여 수요의 급감과 공급의 급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소위 돈 되는 사업이라고 불리는 석유 업계는 한동안 극심한 불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전문가는 이와 같은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 업계가 회복하는 데에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을 거란 암울한 예측을 하기도 하였습니다.(Bloomberg Opinion: Oil’s Recovery Could Take Decades, Not Years)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는 유가 폭락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국 셰일 업계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구제금융(Bailout)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국 현지에서도 뜨거운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Financial Times: Bailing out the oil industry brings a fate worse than death)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코로나19의 확진세를 비롯한 각 나라의 대응을 보기 전까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와레버스는 여러분께 양질의 글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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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오형진

에디터

UCLA에서 경제학과 국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서울대 정치학 석사 과정에 있습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비즈니스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개인 블로그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https://blog.naver.com/dekop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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