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종종 갤러리나 미술관을 방문하여 미술작품을 감상한다.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은 작은 갤러리에서 내 마음에 깊은 파동을 일으키는 작품을 마주하게 될 때 한껏 들뜨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술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세간의 기사에서 누군가의 미술작품이 적게는 몇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니, 매달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나로서는 선뜻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였다.
2017년 11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5209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미술품 사상 최고 경매가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작품도 그렇다. 2019년 11월, 김환기의 ‘우주 05-IV-71#200’(1971)가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1억 8750만 원으로 한국 미술품 경매사 최고가를 기록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술 작품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미술 작품을 소장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왕에 작품을 소장한다면, 판매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을 소유함으로써,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얻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이러한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미술품 컬렉팅 투자, ‘아트테크’ 등장
요즘 MZ세대(밀레니얼, Z세대)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아트테크(Art-Tech)’가 시선을 끌고 있다. 이 글에서 주로 논의할 미술품 컬렉팅 투자, 즉 미술품을 사고 판매하는 방식으로서의 투자는 물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미술품을 공동소유하고 매각하는 플랫폼들의 등장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 미술 경매 시장의 대표사 중 하나인 서울옥션이 지난 1분기 진행한 온라인 경매에서도 MZ세대의 낙찰 비율이 전체의 10%를 넘겼다. 구매하는 작품의 금액대는 1000만 원 내외로, 젊은 작가의 원화 작품이나 유명작가의 판화 작품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미술품 컬렉팅 투자 특성
그렇다면 미술품 컬렉팅 투자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자 방식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미술품 컬렉팅의 시작은 생각보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뉴스에서 오르내리는 원로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진 작가들과 중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동산 투자와 같이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달리, 미술품 컬렉팅은 몇십 만원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처럼 나의 생활반경을 고려한 입지 선정, 정부의 정책 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이 있다.
세금 부담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 미술품을 소장하고 판매하는 경우 부동산과 달리 지방세로서 취득세나 보유세, 재산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대신 국세로서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데, ▲6,000만 원 이상의 미술품에 한정하여 부과되며 ▲그중에서도 양도일 기준으로 생존해 있는 국내 원작자의 작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6,000만 원 이상의 미술품 거래 중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거래하는 경우에만 양도소득세의 납부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품 컬렉팅 투자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와 달리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경우, 작가의 지속적인 성장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판매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10~20년 후를 내다보아야 할 수도 있다. 또한 미술 시장은 주식 시장과 달리 거래 빈도 자체가 낮아 환금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미술품 컬렉팅 투자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술품 가격 측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먼저, 미술품의 가격에는 수요와 공급 이외에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 작품의 소장 내력(provenance) 등 작품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역사, 당대의 평가와 트렌드, 심지어 거물급 컬렉터들의 입김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술품은 원칙적으로 세상에 유일한 ‘유니크 피스(unique piece)’이다보니 작품의 공급 자체가 풍부하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미술품은 ‘사치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와 같이 가격이 오르면서 그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이는 다시 가격 폭등을 부른다.
이와 같은 미술품 가격 예측 불가능성은 미술품 컬렉팅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미술품 컬렉팅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컬렉터가 자신이 맘에 드는 하나의 작품을 독점적으로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는 무형적 가치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최소한 주식 투자와 같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종잇조각’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기수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매번 투자 시장을 확인하여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장시간에 걸쳐 작가의 성장과 작품의 가치 상승을 바라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품을 사고팔아야 할까?
미술품의 구매 및 판매 시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술품의 가격 책정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전형적인 시장 논리와는 결을 조금 달리한다. 때문에 미술품을 사거나 팔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미술시장이 불황기일 때 미술품을 구매하고, 호황기일 때 미술품을 되팔아야 한다는 설명일 것이다. 예컨대, ▲갤러리 전시회나 아트페어가 활성화되지 않거나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낙찰률이 낮아지고 시작가와 비슷한 가격으로 낙찰되는 경우, 이때는 미술 시장의 불황기로서 미술품을 구매하여야 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경매 낙찰률과 낙찰금액이 최고가를 기록하기 시작하며 언론 보도가 이어질 때 ▲새로운 갤러리들이 문을 열기 시작할 때 ▲아트페어에서의 구매율이 치솟을 때 등을 미술 시장의 호황기로 보아 작품을 판매해야 할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술품의 가격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미술품 가격지수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해외는 미술 시장의 다우 지수로 불리는 ‘메이-모제스 미술 지수(Mei-Moses Art Index)’, 우리나라는 KAMP(Korea Art Market Price) 50, KAPIX(Korea Artprice Index) 등이 있다.
하지만, 수집 표본의 제한이나 거래 빈도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각 지수가 시장 전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주식 시장처럼 명확한 가격 산정이나 그에 따른 예측이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그 구매 및 판매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다만, 2~3년 정도 미술 시장의 경기 변화와 그에 따른 작품 가격의 변동을 자세히 주목하면 작품 가격의 적정선을 파악하는 안목이 생길 수 있다.
미술품의 구매 및 판매 경로
미술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중간 경로를 거치지 않고 작가 본인으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나 화랑, 경매시장 그리고 매년 개최되는 미술 작품 장터 개념으로서의 아트페어 등으로부터 작품을 구매하고 되팔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온라인 미술시장 플랫폼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 갤러리
대표적으로, 작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나 화랑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갤러리로서 원로 작가나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아라리오 갤러리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에는 전국 500여 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고, 이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갤러리 입장료는 비쌀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무료인 경우가 많다. 단순히 작품 전시를 대관해주는 갤러리가 아니라면,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전시하는 갤러리는 작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만약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현재 전시하고 있는 경우는 물론, 가장 최근에 전시한 갤러리에 연락하여 현재 판매가 가능한 작품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갤러리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신뢰 관계가 쌓이면, 작품을 먼저 소개해주거나 재판매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구입했던 갤러리에 매도를 요청할 수도 있다.
2. 경매
경매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2차 시장, 즉, 작가의 신작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이상의 컬렉터를 거친 작품이 재판매되는 시장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서울옥션 ▲케이옥션을 들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고 검증된 중견 작가와 원로 작가의 작품들이 거래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매는 오프라인에서 주로 이뤄졌지만, 코로나로 온라인 경매도 활성화됐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온라인 경매로 판매된 3,000만 원 미만 중저가 작품 수는 총 1만 6,369점으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또한 기존 오프라인 경매회사가 온라인 경매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누구든지 작품을 공개하고 구매하는 온라인 매매 및 경매시장 플랫폼도 활성화되고 있다. ▲아트넷 ▲아트시 외에도 ▲프린트베이커리 ▲오픈갤러리 ▲위아트 등 온라인 미술품 매매 플랫폼이 생겼다.
<주요 미술품 경매 및 매매 사이트>
– 서울옥션 : seoulauction.com
– 케이옥션 : k-auction.com
– 아트넷 : artnet.com
– 아트시 : artsy.net
– 프린트베이커리 : printbakery.com
– 오픈갤러리 : opengallery.co.kr
– 위아트 : wart.or.kr
3. 아트페어
아트페어는 갤러리들이 자신들이 판매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가지고 나와 함께 모인 장터로 이해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트 바젤(Art Basel)’이 있다. 아트페어에서 작품 판매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국내 아트페어 수도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한국화랑협회가 매년 가을 개최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키아프), 매년 봄에 개최하는 ‘화랑미술제’ 등이 있다. 갤러리들이 대중에게 판매할 수 있는 작품을 다수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유롭게 시간을 할애하여 다양한 작품을 비교・감상하고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
작품을 고르는 데에는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적정한 예산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작품 가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트프라이스 ▲아트넷 등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사이트 ▲서울옥션 ▲케이옥션 등 경매 사이트와 ▲케이아트 프라이스를 통해 작품의 낙찰가와 작가별 낙찰총액과 낙찰 건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 추정가와 낙찰가의 차이를 가늠하면서 작품의 투자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떠한 작가의 작품이 기대와 달리 유찰되는 경우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그 밖에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을 방문하여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자체가 가지는 미학적 가치, 작품의 소장 내력 이외에도 작가가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지, 그 철학은 뚜렷하게 느껴지는지, 수상 경력이 있는지, 갤러리의 전속 작가에 해당하는지, 해외에서의 전시 이력은 있는지 등의 정보를 부지런히 수집해야 한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가의 그 제작 연대에 따라 작품의 품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잘 살펴봐야 한다.
<미술품 가격 확인 사이트>
– 아트프라이스 : artprice.com
– 아트넷 : artnet.com
– 한국미술품감정협회 : gamjung.net
– 서울옥션 : seoulauction.com
– 케이옥션 : k-auction.com
– 케이아트 프라이스 : artprice.newsis.com
–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 : k-artmarket.kr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술품의 가격 책정에는 작품이 가지는 미술사적 가치와 미학적 아름다움,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 당대 컬렉터들의 취향 등 객관적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들이 고려되는데, 이는 홀로 단기간 내에 파악하기는 어렵다.
특히, 갤러리스트와 같이 미술관련 종사자들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고급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컬렉터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러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따라서, 컬렉터들은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부단히 작품에 대한 정보 수집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 감상을 통해 나의 생각과 철학을 조금씩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는 갤러리스트와 같이 미술관련 전문가들과의 다양한 네트워킹과 ▲월간미술 ▲아트나우 등 미술 잡지를 구독하며 미술평론을 꾸준히 접해 작품에 대한 심미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나가며
미술품에 대한 ‘투자’를 고민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도 존재한다. 미술 작품에 대한 순수한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이상 이러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외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만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고, 이를 통해 비로소 훌륭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터부시할 일은 더욱 아니다.
미술 작품이 가져다주는 깊은 울림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명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 그림 사는 MZ세대…미술시장 큰손으로 부상
- 「2020 미술시장실태조사」 (2019년도 기준)
- 김정환, <샐러리맨 아트컬렉터>, 이레미디어, 2018
- 윤보형,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중앙북스, 2020
- 손영옥,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자음과모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