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힘든 경제 상황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상품이 있다. 평생 한두 번 살까 말까 한 금액이지만, 매출을 보면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잘 팔리고 있는지 가늠이 안 간다. 바로 이탈리아 명품 구찌의 얘기다.
이탈리아 명품 기업 구찌는 14년 연속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며 이례 없던 매출 기록을 세우고 있다. 구찌와 함께 발렌시아가, 입생로랑, 등을 소유한 모회사 케링그룹의 한 해 매출도 17년도 기준 25%가 늘었고, 주가 역시 84%가 뛰었다. 미국의 래퍼 릴 펌프는 구찌갱(Gucci gang)이라는 노래를 만들며 2030층으로부터 열광받는 구찌를 과시했다.
100살 넘은 늙은 구찌는, 어떻게 밀레니얼층을 사로잡았을까
2014년까지만 해도 구찌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년 매출은 하락세를 기록했고,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해 젊은이들에게는 외면받았다. 그러던 와중 구찌를 ‘올드’에서 ‘힙’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마르코 비자리 CEO가 구찌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면서부터다.
사람이 답이다
비자리 CEO는 케링 그룹에겐 마이다스의 손과 같은 존재다. 그는 2005~2009년 영국 명품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의 흑자 전환을 주도했고, 이후에는 보테가 베네타의 연 매출을 4억 유로에서 10억 유로로 올려놓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케어링 그룹의 프랑수아 앙리피노 회장은 비자르에게 구찌의 경영을 맡겼고, 비자르는 흔쾌히 구찌의 CEO 자리를 수락했다.
비자리 CEO는 인사팀에 ‘구찌의 인재’ 명단을 요청했고, 면담 끝에 12년간 구찌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내세웠다.
미켈레는 유명 디자이너 톰포드에게 발탁된 인재였다. 1990년 톰포드에게 발탁된 미켈레는 2002년에 구찌에 입사 후 12년간 구찌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되면서 진가를 드러냈다.
대개 패션업계에서는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며 내부 혁신과 변화를 준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12년 동안 같은 구찌 디자이너로 있던 미켈레를 영입한 것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비자리의 안목이었을까. 미켈레는 임명되자마자 명품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파격적이지만 난해하지 않은 디자인
미켈레는 지금껏 구찌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파격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모노톤 대신 형형색색의 의류와 장신구에 꽃·호랑이·나비·뱀 등의 장식을 더했다. 새로운 구찌 디자인을 본 내부 사람들은 우려의 반응을 내놓았다.
사실 기존에 구찌라고 하면 틀에 박힌 디자인과 로고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미켈레가 전면에 나선 이후 구찌라고 하면 조금 더 화려하고 눈에 띄는 디자인들이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티셔츠 운동화 등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아이템까지 선점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미켈레의 디자인은 파격적이긴 하지만 난해하진 않다는 것이다. 즉 눈에 띄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입을만한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나보다 젊은 직원이 더 잘 안다
미켈레 디자이너가 구찌의 매출 혁신에 기여한 바는 크다. 하지만 단순히 디자이너 한 명 때문에 구찌의 매출이 급증한 것은 아니다. 비자리CEO는 최고경영자로서 회사의 경영에도 혁신적인 문화를 도입했다. 그중 하나가 ‘그림자 위원회’이다. 그림자 위원회는 30세 미만의 직원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젊은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들어졌다. 구찌의 새로운 매출이 2030 층에서 발생하는 것을 눈여겨본 비자리 CEO의 인사이트가 반영된 조직문화다. 젊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2030 소비자층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고위 경영진과 회의 시간에 토론한 주제를 젊은 직원들과 재차 토론하며 젊은 세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 등에 반영했다”
– 비자리 CEO-
비자리CEO는 그림자 위원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젊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림자 위원회를 통해 젊은 세대의 가치관에 맞게 구찌는 모든 제품에 모피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죽을 낭비하지 않도록 새로운 공정을 도입했다.
명품기업도 디지털 앞엔 장사 없다
그 결과일까. 구찌는 2016년 가트너 L2가 집계한 ‘디지털 IQ 지수에서 1위에 올랐다. 당시, 대다수의 명품 기업들이 오프라인을 매장을 중시했지만 구찌는 온라인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였다. 보통의 명품 기업들은 매장에 중심을 두고 기껏해야 웹사이트를 정비하는 데 그쳤다면, 구찌는 온-오프라인에 판매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구찌는 명품 브랜드 중에는 처음으로 스냅챗 등 SNS 플랫폼을 이용해 패션쇼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또, 인스타그램을 활용하여 각자의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로 짤방을 만들어 구찌의 제품을 홍보하는 MEME 캠페인을 진행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재밌다’는 단순한 이유로 짤방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즐기는 습성이 있다. 구찌는 르 마르셰 드 메르베이 콜렉션 당시 밈을 이용하며 바이럴 효과를 누렸다.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앱으로는 다양한 예술가나 인플루언서와 협력해 젊은 층을 겨냥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장 프랑수아 팔루 케어링 부사장은 “구찌는 다양한 디지털 채널에 수익을 재투자하고 있다”라며 전자상거래와 모바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경영자와 함께 100살 넘은 구찌는 새로운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앞으로의 구찌는 또 어떤 진화를 할지 주목된다.